어제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왔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일 텐데요.
그래도 《인터스텔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영화관에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역시 거장이 만든 영화답게 압도적인 스케일과 몰입감이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왜 그렇게 고향에 빨리 돌아가지 않았을까?”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했고,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이타카가 분명한 목적지였는데 말이죠.
물론 신들의 방해와 폭풍, 괴물 등 수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오디세우스가 편안한 섬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문득 제 인생의 한 시기도 떠올랐습니다.
인생에서 방향을 잃고 번아웃을 겪으며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던 시간이 있었는데요.
그때는 단순히 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휴식과 목표를 잃고 멈춰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와 《삼국지연의》의 유비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인생에서 목표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1. 오디세우스에게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이타카의 왕이자 뛰어난 지략가였습니다.
10년간 이어진 트로이 전쟁에서 활약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트로이 목마 역시 오디세우스의 계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의 목표는 아주 분명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것.
그런데 귀향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고, 폭풍과 난파를 겪으며 괴물과 마녀를 만나고 여러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트로이 전쟁에 10년, 귀향에 다시 10년을 보내면서 오디세우스는 무려 20년 동안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이야기가 바로 칼립소의 섬입니다.
2. 아름다운 섬에서 7년 동안 멈춰버린 오디세우스
오디세우스는 항해 중 표류하다가 칼립소라는 여신이 사는 아름다운 섬에 도착합니다.
칼립소는 그를 구해주고 극진하게 보살펴줍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풍족한 음식, 사랑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전쟁도 없고 왕으로서 책임질 일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자신과 함께 있다면 늙지도 죽지도 않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그곳에서 오디세우스는 무려 7년을 머뭅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합니다.
그에게는 돌아가야 할 고향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었는데 왜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렀을까요?
저는 이 장면이 단순히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인생을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편안한 곳이라도 내가 가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면, 결국 나를 붙잡는 섬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칼립소의 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편안한 직장에 안주하는 것일 수도 있고,
끝없이 유튜브나 SNS를 보는 것일 수도 있고,
쇼핑이나 게임처럼 당장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즐거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편안함 때문에 내가 가야 할 곳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3. 달콤한 로토스 열매처럼 목표를 잊게 만드는 것들
《오디세이》에는 또 하나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로토파고스, 연꽃을 먹는 사람들의 섬입니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그곳의 열매를 먹자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잊어버립니다.
더 이상 배를 타고 돌아가려 하지 않고 그곳에 계속 머물기를 원합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현대판 로토스 열매가 너무 많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짧은 영상,
SNS,
게임,
충동적인 소비,
각종 즉각적인 즐거움들.
잠깐 즐기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서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포기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사람을 가장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고통이 아니라 너무 달콤해서 시간을 잃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유혹인지도 모릅니다.
4. 유비 역시 안락함 때문에 자신의 목표를 잊을 뻔했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비는 한실의 부흥이라는 큰 목표를 가지고 천하를 떠돌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형주를 둘러싼 상황 속에서 오나라에 머물게 되었고,
손권의 여동생과 혼인하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편안한 생활을 누리게 됩니다.
화려한 궁궐과 연회, 아름다운 아내와 풍족한 생활.
평생 전쟁터를 떠돌며 고생했던 유비에게는 너무나 달콤한 환경이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그 안락함이었습니다.
유비가 점점 형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자 조운이 그를 깨우게 됩니다.
제갈량이 미리 준비해둔 계책을 통해 유비에게 형주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려 다시 현실을 바라보게 만든 것입니다.
결국 유비는 오나라를 떠나 자신의 기반인 형주로 돌아갑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 자신의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때로는 내가 현실을 외면하고 있을 때 한마디 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내가 너무 편안함에 빠져 있을 때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 우리 인생에도 나를 깨워주는 ‘멘토’가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5. 오디세우스와 유비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오디세우스와 유비는 전혀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만들어진 인물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목적지는 분명했지만, 그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서 안락함에 흔들렸다는 것.
오디세우스에게는 이타카가 있었습니다.
유비에게는 자신의 대업과 형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잠시 그 목표에서 멀어질 뻔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이루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싶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싶고,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당장의 편안함이 장기적인 목표보다 중요해집니다.
“오늘 하루만 쉬자.”
“조금만 더 있다가 시작하자.”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이런 생각이 반복되다 보면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몇 달이 몇 년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을 향해 가고 있는가?”
6.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은 결국 ‘시간’입니다
돈은 잃어도 다시 벌 수 있습니다.
실패한 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특히 40대와 50대가 되면 시간의 무게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무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목표가 반드시 거창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을 지키는 것,
건강을 회복하는 것,
경제적인 기반을 만드는 것,
자신의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는 것,
자녀가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 모든 것이 충분히 좋은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표의 크기가 아닙니다.
내가 지금 사용하는 시간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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